한국의 연구중심대학 공대 박사과정 고년차 학생 상당수는 연구과제 제안서를 주도적으로 작성한 경험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안서를 작성하려면 해당 연구의 국내외 연구 동향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학술지 논문의 서론을 작성할 정도로 해당 연구내용을 숙지하면 제안서를 충실히 작성할 수 있습니다.
연구제안서는 설득이 목적입니다. 왜 이 연구주제가 중요한가? 선행연구의 한계가 무엇인가? 이 연구에서 새롭게 시도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결정적으로 정부 기관에서 연구비를 지원할 정도로 학술 가치와 파급효과가 있는 주제여야 합니다. 그냥 본인 혼자 관심 있고 재밌는 주제라면 연구비를 받기 어렵습니다. 사실, 제안서를 잘 작성하더라도 과제를 수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안 평가(서면 혹은 발표)에서는 제안서 내용뿐만 아니라 연구책임자(교수)의 경력, 실적(논문과 기존 수행 과제), 연구 인프라(장비, 인력, 기관 수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과제 선정평가에서는 최대한 유사 전공자가 참여하는 동료평가를 진행합니다. 심사위원 각자 제출한 점수를 합산(최고/최저점 제외)해서 순위대로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 R&D 과제의 경우에는 경쟁률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 연구 제안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연구책임자의 정량적인 실적과 평판으로 과제 여부가 결정되기 쉽습니다. 한편, 사업단이나 팀 단위의 R&D 과제(교내외 여러 교수가 참여)에서는 여러 팀끼리 경쟁하게 되고 선정 과정에서 변수가 많아서 꼭 실력대로 과제를 수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용역과제는 조달청 공개입찰을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경쟁팀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 에는 단독입찰이라 경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제 내용이 평이하고 세부전공자가 많으면 경쟁 입찰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과제 난이도가 높고 특정 세부전공자 혹은 특정 장비를 보유한 연구자만 참여가 가능한 경우에는 거의 단독입찰로 진행됩니다. 애초에 발주 기관에서 과제를 기획할 때부터 특정 연구자를 염두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영화감독이나 드라마 작가가 작품 구상 단계에서부터 연기자들을 특정 배역에 염두하고 맞춤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조달 공개입찰을 통한 공정한 과제 수주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연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연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조교수 부임 초창기에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학생도 없고 장비도 없는데 누가 큰 국가과제를 맡기겠어요? 그래서 교내과제와 연구재단 신진과제로 시작하여 실험실을 꾸며야 합니다. 특히,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인맥이 별로 없으면 열심히 학회에 나가서 발표하고 인지도를 높여야 합니다. 학계와 과제발주기관의 인맥을 많이 만들어야 연구과제 수주가 수월합니다.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이미 상당한 인맥을 쌓고 있으므로, 과제 수주는 시간문제입니다.
제안서를 잘 써야 과제를 수주하고, 연구비가 있어야 대학원생을 뽑아서 실험을 하고, 실험 결과로 논문을 쓰고, 이 실적으로 다시 과제에 지원하는 무한반복을 거칩니다. 이공계 연구실 운영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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