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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

과기원이 타 대학 교수 사관학교가 되고 있는 이유

by Prof. Sung-Deuk Choi 2023. 11. 12.

몇 달 전에 샌디에고 한인마트에서 UNIST 타 학과 임용 동기 교수님과 마주쳤습니다. 샌디에고에 연구년 나온 것을 서로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마주쳐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이후에 2009년에 UNIST에서 함께 부임했던 다른 학과 교수님들 근황이 궁금해서 학과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당황했습니다. 개교 초기에 함께 하던 많은 교수님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올 3월자 면직신청 공람 서류를 확인했더니 해외 대학으로 옮기신 분들도 있고, 서울대, 포항공대, 고려대 등으로 옮기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당황스럽기도하고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학과 문제만은 아닙니다. 올해 8월에 우리학과에서도 한 분은 해외로, 한 분은 고려대로 이직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우리학과에서 서울대, 연세대, 카이스트, 성균관대로 이직한 교수님들이 있었는데, 수도권 모교로 이직한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이직 교원은 계속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초창기에 지원을 잘 해주면 실적이 많이 나오고 그러면 다른 대학의 스카우트 대상자가 됩니다.

 

교원 이직은 지방 과기원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연구장비와 기본 인프라는 압도적으로 우수하지만 지방 소재라는 한계가 있어서 교수들도 자꾸 서울로 가게 됩니다. 지방에 있으면 여러 학술활동과 국가기관 행사 등에 참석하기도 어렵기 때문에(KTX 열차에서 김밥 먹으면서 노트북 펴고 일 하는 것도 10년 넘게 하면 더 못 하겠습니다) 점점 재야의 고수와 같은 상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자녀 교육 문제도 심각합니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가기가 힘들고 서울과 지방의 사교육 여건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기본적인 정주여건이 되지 않으면 인재가 유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학에서는 신진 연구자나 타 대학의 스타급 교수 채용에는 신경을 쓰지만, 해당 세부 전공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는 중견교수들에 대한 처우 향상은 거의 고려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학과 선택 자율로 인해 일부 전공을 제외하면 전공 진입 학생보다 교수가 많은 학과가 속출하다보니 대학원생 수급이 극도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연구 차원에서 과기원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가장비 지원와 대학원생의 안정적인 박사병특인데,  더 이상 파격적인 장비 지원이 없고 박사병특 대학원생 지원이 감소하는 상황이면 조교수/부교수는 당연히 이직을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기원이 다른 대학의 교수 사관학교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과기원 교수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연구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교수들이 이직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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