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잘 쓰려면 우선 글쓰기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UNIST에서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고, 발표와 과제도 모두 영어로 해야 합니다. 교양과목으로 몇 년 전부터 한국어 글쓰기 과목이 생긴 것 같은데 UNIST 초창기 졸업생은 글쓰기 관련 수업을 거의 못 듣고 졸업했습니다. 4년 동안 한글 글쓰기 훈련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로 대학원에 올라와서 학회 초록, 논문, 보고서를 한글로 써야 하는 현실입니다.
SCI 논문을 잘 쓰려면 일단 한글로 글을 잘 써야 합니다. 영문법은 지도교수나 전문 에디터가 교정을 하면 되는데 그 외 글이 갖추어야 기본 요건이 부족하면 단순 교정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끊임 없이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글짓기 반에 들어가서 글쓰기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래 링크는 3년 동안 글쓰기를 가르쳐 주신 이화주 선생님 관련 신문기사입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특별한 글쓰기 훈련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수능 외에 대학별 본고사에 논술시험이 별도로 생기면서 3년 내내 글쓰기 훈련을 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셨던 조주현 선생님(아래 기사 참조)은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매일 노트에 신문 사설을 오려 붙이고 필사하는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신문 사설은 사실을 전달하는 글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논리적인 글입니다. 단순히 베껴 써보는 것으로도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많은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문학과 종교학 관련 과목 위주) 글을 많이 썼습니다. 95년 PC 통신이 활성화 되면서 하이텔에도 글을 많이 올렸고(한겨레 신문 기사에 인용된 적도 있습니다), 학과 내 소동아리인 땅의소리(당시에는 학회로 불렀음, 지질학과 편집부 후신) 활동을 4년 내내 하면서 매주 책을 읽고 발제문을 만들어서 논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서는 석사 1학년 여름부터 논문 작성을 시작해서 포항에서의 7년은 샘플링, 실험, 글쓰기, 발표하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학원 입학 전까지는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글 위주였다면, 대학원에서는 연구결과를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논문과 보고서 위주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논문 외에도 언론기고, 자문서, 평가서, 추천서, 홈페이지/블로그, 이메일 등 훨씬 다양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제목이 "연구하며 글쓰기"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이면 한글논문을 잘 쓸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실 학생이 작성한 논문이나 보고서를 고치거나 국내 학술지 논문을 심사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많습니다. 오탈자, 띄어쓰기, 주술관계, 번역체 문제가 심한 글이 많습니다. 이런 글은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래프 수준도 낮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래프가 깔끔하면 문장도 깔끔합니다. 대충 엑셀로 그래프 그린 논문 대부분은 글도 엉망입니다. 저는 논문 내용 이전에 서식을 매우 강조하고 우리 연구실 서식대로만 작성하게 합니다. 논문 겉모습을 가꾸다 보면 문장도 자연스럽게 다듬게 됩니다.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므로, 일단 그림도 대충 작성하고 나중에 더 고치겠다"면서 초안을 제출하는 학생이나 포닥들이 있는데 이런 논문치고 내용이 좋은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훈련을 해야 하고, 글쓰기 책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글쓰기 책도 제대로 안 읽고 논문을 잘 쓰려는 것은 허황된 욕심입니다. 최소한 아래 책 정도는 읽고 국문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박사과정이라면 한글 글쓰기, 영문 글쓰기, 영문법, 발표(프리젠테이션), 통계, 컴퓨터 언어 관련 책을 구입해서 개인 책상 위에 놓고 수시로 참고해야 합니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문 영어 셀프 교정 방법 (0) | 2023.04.12 |
---|---|
대학원생들의 글쓰기 실수 모음 (0) | 2023.04.12 |
ChatGPT 논문작성에 사용할 수 있을까? (2) | 2023.02.18 |
대학원생 논문 수정하기 (0) | 2023.02.07 |
MDPI 저널 투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3) | 2023.01.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