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기오염시간에 위해성 평가를 다루었습니다. 10년 전 기고문이지만, 학생들이 읽어보면 수업 내용의 의미를 더 알 수 있을 것 것 같습니다.
‘농약급식 게이트와 환경 전문가의 실종’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최근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서 “농약급식 게이트”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서울시에 납품되는 농산물에 대해 잔류농약분석을 실시한 결과, 일부 시료에서 허용기준 이상의 잔류농약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시 867개교에 농약급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다양한 언론매체에 보도된 기사를 검토한 결과, 환경 전문가 의견은 거의 없고 정치인 사이의 공방, 감사원 관계자의 해명, 학부모의 우려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잔류농약과 같은 미량독성물질을 분석하는 연구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 과학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애초부터 관심대상이 아닌 것 같다.
환경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환경오염은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기 쉽다. 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하게 되면, 전문가들은 배제된 채 정치적 구호가 난무한 사회적 갈등이 유발되다가 결국에는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상당수 환경문제는 국가주도의 경제성장과 동반되어 발생했으며, 환경오염 피해 당사자들이 노동자와 서민 위주였기에, 환경운동이 자연스럽게 인권·노동운동과 연계되었고 더 나아가 진보정치권과도 밀접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환경문제의 본질은 잊히고, 정치적 논쟁으로 흘러가다가 흐지부지되곤 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환경문제가 단골로 등장하는데, 선거 후에도 해당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다. 신이 주신 축복이라는 망각 덕택으로, 논란이 되던 환경문제는 1년만 지나도 유권자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환경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경 전문가가 전면에 나서서 과학적인 검증을 해야 한다. 그 후에 이해당사자들의 상반된 입장을 조율하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인의 역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를 통해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들이 사회적 합의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환경문제는 정치인들과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다수 전문가는 침묵하거나 인터뷰를 하게 되더라도 일반인 수준의 이야기를 하거나 원론적인 의견만 개진하는 경우가 많다.
환경문제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때, 대부분의 해당 전공교수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칫하면 정치공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한순간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폴리페서(polifessor)로 낙인찍히고 학자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환경분야 이공계 교수들이 수행하는 상당수 연구과제는 정부 지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학자적 양심을 뒤로한 채 정치적으로 편향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고, 일부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일종의 양심선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 최고 전문가라고 손꼽히는 대다수 연구자는 침묵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환경 전문가들이 본인의 연구결과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공선택이나 대학원 진학 상담을 위해 내 연구실에 방문한 학생들이 “교수님은 왜 환경을 전공하게 되었고,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라고 종종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환경연구는 온종일 실험실에서 피펫 들고 실험하고 논문만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실험실 밖으로 나가서 실제로 환경문제와 마주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학문이 환경이다. 내가 하는 연구는 단지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우리나라 환경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살아있는 연구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나 역시도 환경 전문가로서 객관적인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하는 연구 대부분이 발암물질이나 환경호르몬의 배출원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얼마나 인체에 유입되는지 파악하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연구결과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도 수차례 목격하기도 했다.
글을 맺기 전에 다시 농약급식 문제로 돌아가 보자. 지난 5월 15일 자 울산매일 기고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농약과 같은 미량유해물질에 관해서는 친환경, 무공해, 무농약, 청정이라는 단어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유해물질 노출량을 고려한 인체 위해성평가 결과가 중요한 것이지 검출 사실 자체와 기준치 초과 여부는 전문가들에게는 과학적 논란거리도 아니다. 100 km/h가 제한속도인 도로에서 99 km/h로 달리는 자동차는 안전하고, 101 km/h로 달리는 자동차는 위험한가? 이미 농약급식은 환경문제가 아닌 정치문제가 되었고, 전문가 의견은 중요치 않은 사안이 되었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만들어 냈고, 언론은 문제를 확대했고, 전문가는 실종됐고, 국민들은 과학적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불안해하거나 분노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승자가 되든지 선거 끝나고 한 달, 아니 일주일 뒤에도 농약급식이 논란이 될까?
출처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https://www.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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