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1994년 대입에 처음 등장했고, 저는 95학번이므로 수능 첫 세대입니다.
그런데 요즘 수능 영어가 많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어떤 수준인지 확인하려고 문제를 풀어봤는데, 듣기 평가는 쉬웠지만, 독해 문제를 많이 틀렸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영어 문제를 풀어서 2023년 독해 문제가 어렵게 느껴졌나? 라는 생각으로 1995년 문제도 풀었습니다. 훨씬 쉽고 빠르게 풀었습니다.
왼쪽 1995년 독해 문제는 분량도 적고 내용도 평이합니다. 오른쪽 2023년 지문은 전반적으로 길고 난해한 내용이 많습니다. 어려운 단어도 꽤 많이 나옵니다. 마치 영어 본고사를 볼 때와 비슷한 수준의 문제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비해 지문이 길고 내용은 어려운데 더 빨리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수능 영어 문제를 이렇게 어렵게 낼 필요가 있을까요?
지문도 너무 다양한 영역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초 지식 여부에 따라서 독해 속도가 많이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관련 문제가 나오면 지문을 안 읽어도 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의 관심사에 따라서 독서 범위가 달랐다면 영어 독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편, 수능 영어 지문의 글이 "글쓰기" 차원에서 과연 좋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의문입니다. 1995년 지문 상당수는 억지로 만들었거나 한국인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이나 상황을 넣은 경우가 있습니다. 2023년 지문은 과거 보다는 확실히 영어스럽지만, 실제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하는 것과는 거의 상관 없는 특정 분야의 세부내용이 많습니다. 또한, 상당수 지문의 개별 문장 길이가 과도하게 길고 문장구조가 이상한 곳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초과학, 전공 원서, 학술논문과 같이 독자의 이해를 고려한 글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기본은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영어 수준을 평가하는 문제라면 지금 수능 문제보다 훨씬 쉽고 명확한 문제여도 됩니다.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실생활과 고등학교/대학교 상황에 맞는 문제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교과목 선택, 기숙사 배정, 학생 생활 상담, 국내외 시사, 국내외 여행 상황(항공권 발권 등),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 AI, 기후변화, 교우 관계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의 지문을 대폭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할 국내외 이슈에 관한 문제를 몇 개 더 추가하면 됩니다. 지문을 너무 길게 하지 말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실제로 대학, 대학원, 직장에서 영어를 사용할 때 수능 영어처럼 빨리 지문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영문서와 원서를 읽고 글을 씁니다. 우리나라 수능 영어가 정말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원서와 논문을 읽을 때는 천천히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하면 읽어야지, 수능 영어처럼 후다닥 읽어서는 절대 제대로 공부할 수 없습니다.
P.S.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중고등학교 영어성적과 공인영어(토익, 토플, 텝스 등) 점수를 믿지 않습니다. 실제 영어 실력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시간에 문법 오류 찾고 지문을 속독해서 답을 찾아내는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시험 실력"입니다. 저는 석박사 과정 중에 토익 시험을 세 번 봤는데 700, 800, 900점 대로 점수가 급격히 높아졌고, 이후로 토익 점수를 믿지 않습니다. 토익 점수가 높아졌지만 실질적인 영어 실력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시험 보는 요령이 생겨서 점수가 올라간 결과입니다. 물론 정말 영어 실력이 뛰어나면 시험 성적도 좋겠지만, 중상위권 실력의 한국 학생이라면 점수가 별로 의미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 발표(질의응답)와 논문 영작을 시켜보면 해당 학생의 영어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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