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중간고사 답안지가 말해주는 대학원생의 태도

Prof. Sung-Deuk Choi 2025. 4. 30. 12:39

지난 주는 중간고사 기간이었습니다. 이번 학기는 대학원 수업(유기오염물질 분석 및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우리 연구실 전문 분야를 다루는 수업입니다. 그런데 14명 수강생 중에서 우리 연구실 학생은 4명뿐이라서 아주 세부적인 내용으로 강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험문제도 요즘은 단답형 암기형보다는 서술형(수업에 충실했으면 다 적을 수 있는 문제)으로 내고 있습니다. 

 

보통 한국 이공계 대학원에서 학생들의 수업 부담은 적습니다. 수업보다는 개인별 연구 결과가 중요하기도 하고, 지도교수가 아닌 다른 연구실 교수의 과목은 세부전공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서 학생들에게 학부 수업과 같은 집중력과 시험공부를 요구하기도 어렵습니다. 학점도 상당히 후하게 주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학부에서는 종종 C, D, F를 주곤 하지만, 대학원에서는 대부분 A와 B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아서 그런지 터무니 없는 답안을 제출하는 대학원생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4명이 아주 성의 없는 답안지를 제출했습니다. 문제보다 짧은 답도 많았습니다.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고자 충분히 설명하고 유튜브 동영상도 보여준 내용인데도 답을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강의 자료를 대폭 업데이트하고 핵심 개념 이해를 강조했는데, 이런 답안지를 받고 보니 당혹감과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영작 실력이 없어서 답을 못 썼나? 아예 공부할 의지가 없나?

 

처음에는 답안지들을 가지고 해당 학생들 지도교수님들께 찾아가서 학생 지도 제대로 하라는 얘기를 해야할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의 없는 답안지를 제출한 학생들이 어느 연구실 소속이고 대학은 어디 출신인지, 자대 출신이면 학부 성적은 어떤지 등을 파악하고서는 교수님들에게 찾아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해당 학생들의 지도교수님들이 평소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답안지 작성하는 태도만 봐도 연구를 어떻게 할 거라는 것을, 논문을 어떻게 쓸 것이라는 것을, 교수님과 연구 관련 소통을 어떻게 하리라는 것이 짐작이 됩니다. 

 

단순히 답안지 작성의 문제가 아니라 학업과 연구에 대한 기본 태도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출신 대학 서열 보다는 학부 시절 학점에서 잘 드러납니다. 학점이 높다는 것은 성실함과 진지함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실한 학생들이 대학원에서도 열심히 연구하고 꾸준히 실적을 쌓아서 연구자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신 대학 서열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중위권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이 이러한 성실함을 무기로 계속 연구하고 수준 높은 연구자가 되는 사례는 제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이번 중간고사를 계기로 다시 깨달았습니다. 대학원에서의 연구 성과와 성취는 지식의 양과 총명함만이 아니라 학업과 연구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정답을 잘 모르더라도 본인 능력껏 정성스럽게 답안을 작성하는 자세, 수업에 집중하고 성실히 참여하겠다는 마음, 연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 등이 연구자로서 성장하기 위한 기본입니다. 출신 대학의 명성과 포장된 이력보다,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가 있어야 연구자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